세상(世上)에는 현세적(現世的)인 여러 갖가지의 복(福)이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새해에 지인(知人)들에게 복 많이 받으라고 덕담(德談)식으로 인사를 건낸다.
이런 인사에는 돈 복이나 건강의 복, 이것 등으로 인해 생기는 무사(無事)와 안녕(安寧), 태평(太平)과 번영(繁榮), 명예(名譽)와 나름대로의 세상적(世上的) 힘과 권력을 가지라는 뜻을 포함하고 있다.
그런데 성경에서 말씀하는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이라는 의미는 이런 육신과 땅에 속한 세인(世人)들의 눈에 본능적 감각으로 보여 지는 복과는 너무나도 거리가 멀다.
왜냐하면 이 복은 예수 그리스도 그 분 자체를 말하는 것이요, 그가 이룩하신 십자가 구원을 가르키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육(肉)에 속한 이들 - 불신자(不信者)들 뿐만이 아닌 오늘의 절대다수의 육적(肉的) 기독교인들 - 에게는 철저하게 무관심의 대상(對象)이요, 중요하고 귀중한 가치(價値)도 아니고, 도무지 땅의 세계에서는 자랑스럽지가 않아서 꺼려지는 것이고 욕(辱)된 것뿐이다.
또 이들에게는 도리어 재수(財數) 없음과 화(禍)로 눈에 비춰진다.
하늘에 속한 차원(次元)과 수준(水準)의 신령한 복이란 땅의 차원과 수준에서 봤을 땐 더 높은 것이 아니라 비교 할 수 없을 만큼 낮고 천(賤)해 보인다. 그리고 복이라고 할 수도 없는, 세상적 시각(視覺)에서 봤을 땐 무지(無知)와 미련함에 속(屬)한 것이다.
- 불가(佛家)의 교리(敎理)나 공맹(孔孟)의 도(道), 윤리 도덕적 또는 기복주의(祈福主義)의 신(神)으로 이해되는 그런 식의 예수나 하나님은 인류의 정신과 마음에 주어지는 복이라고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이해 하기도 한다. 그러나 엄연(儼然)히 성경이 계시(啓示)하는 위로부터 나는 하늘에 속(屬)한 신령한 복이 결코 아님을 사람들은 깨달아야 한다 - 그러나 한편 고난과 죽음, 조롱과 멸시, 핍박과 박해 속에서 주어지는 하나님과 아들 그리스도 예수로 인(因)해 하늘에 속한 참 믿음의 성도(聖徒)만이 아는 신령에 관한 감추어진 보화(寶貨)와 같은 절대유일(絶對唯一)의 복인 것이다.
곧 돈, 권력, 명예, 건강 따위 등이 없어도 예수로만 기쁘고 행복하며 영광이 되는 것, 영혼의 참 만족, 그런 가치와 생(生)의 기준(基準), 인생의 척도(尺度)로 주어지는 신앙을 뜻한다.
눈에 보이는 아무런 증거(證據), 세상에 속(屬)한 복이 없어도 그리스도께로부터 당하는 구속(救贖), 진리와 영생(永生)의 참 하나님께로 향한 믿음, 소망, 사랑이 생기는 것을 의미한다.
세상의 땅에 속한 복들은 오래 못 간다. 결국 다 잃어버리게 되어 있다.
이것과 같이 외형적으로는 비슷하게 설파(說破)한 종교적 성인(聖人)들과 도덕적 성현(聖賢)들의 얘기도 인간 속사람의 근원(根源)을 달라지게 할 수 있는 영역(領域)의 것이 아니다. 단지 모사적(模寫的)이고 간접적인 것일 따름이다.
사람들을 죽음의 사망권세(死亡權勢)로부터 영생(永生)으로 옮겨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피 흘려주신 그 십자가의 사건만이 모든 믿는 자의 영원절대(永遠絶對)의 복인 것이다.
영생은 단순히 영원토록 살게 되는 것만을 뜻하지 않는다. 피조물(被造物)에 불과하고 죄인(罪人)인 인간이 진선미(眞善美) 하신 신의 마음을 읽어 낼 수 있고, 신의 마음과 마음이 통(通)하고 하나 되는 것을 그 하나님에 의해 일방적으로 허락 받는 것, 그래서 신자(信者)가 신성(神聖)에 참여(參與)하는 인격적 성품상(性品上)의 거룩한 특권(特權)을 얻게 됨을 말하는 것이다.
올 한해 이 복을 깊이 깨닫는 자가 진정(眞正) 복된 자이다.
그러나 분명 그 수(數)는 극소수(極少數)일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와 같이 사지(四肢)가 찢어지고 피를 쏟는, 진리로 인한
영적고통(靈的苦痛)을 감내(堪耐)하는 자만 얻을 수 있는 복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좁고 협착(狹窄)한 길에 놓여 있는 이 복을 진심으로 많은 사람들이 얻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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