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날 현대인들은 교회를 다니지 않는 비기독교도(非基督敎徒)이건, 기독교 신자이건, 여러 가지 사상적 형태로 신(神)을 논한다.
예를 들어 교회에 나가지 않고 믿음생활을 전혀 하지 않는
비신앙인(非信仰人) 철학자들도 -사실은 기독교 현대신학자들과 목회자들도 마찬가지 - 각기 고유한 자신들만의 불가지론(不可知論), 이신론(理神論), 범신론(汎神論), 만유재신론(萬有在神論) 등의 철학적 신학적 신관념(神觀念)을 갖고 있다.
또 기독교 외에 다른 수많은 갖가지 세계내의 종교들에서도
저마다 신봉(信奉)하는 여러 다신(多神)이 있다.
이렇게 사람들은 다채롭게 저마다 이성, 역사, 문화, 자연 등의
일반계시(一般啓示)를 통해 신을 이해하려고 하는 천연적 습성(天然的 習性)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인간은 이런 내재적 영역에서 신을 보면 신의 그림자만 보게 되는 격이고 신의 앞, 얼굴이 아닌 등, 뒤만 보는 꼴이기 때문에 결국 신을 보았다고 할 수 없다.
단지 내적(內的)으로가 아닌, 외적(外的)으로 드러나 있는 빗나간 신(神)의 형상만을 보는 것뿐이다.
그런데 문제는 오늘날 현대교회에 다수의 율법적(律法的), 외식적(外飾的), 형식적(形式的) 기독교인들이 하나님 아버지와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도 현세적 안목(現世的 眼目)으로 이 성부와 성자를 육체대로 - 이 말의 뜻은 탐욕적인 육적 그리스도인들의 기복적 신앙 뿐 만이 아니라 심지어 기독교내의 고급한 윤리도덕에 기반(基盤)을 둔 고도로 경건한 종교적 심성으로 하나님을 접하는 신앙과 신비적 은사역사(神祕的 恩賜役事) 중심의 신앙까지를 포함해서 하는 말임 - 알고 믿기에 이들이 우러러보는 하나님이 과연 진짜 참 하나님인가? 하는 것이다.
입술로는 하나님 아버지를 부를 수 있고 이 아버지에 대해서 스스로 안다고는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성경 말씀, 마태복음11장27절에 나오는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 라는 예수의 말씀과 같이 특별계시(特別啓示)의 주체자(主體者)인 이 아들 안에 신자가 거해야 아버지를 알 수 있고, 이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아야 아버지를 아는 것이지, 이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지 않으면 아버지와 실질적으로는 아무 상관없는 자기 사고에 기인한 이름만의 그리스도인 밖에 될 수 없다.
허나 오늘날 계시의 정신을 소유하지 못한 육체와 이성중심의 크리스찬들은 ‘하나님’하고 외치면서 자신들의 머리에서 떠올리기만 하면 그 분이 하나님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하나님이란 분은 불신자인 세상 사람들과, 하물며 신자라 하더라도 육에 속한 기독교인들의 사고에는 담겨 질 수 있으신 분이 아니다.
하나님은 보이지 아니하는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신 영이시기에 육의 존재자인 한낱 피조물인 인간 따위가 포착(捕捉)하거나 파악 할 수 있는 그런 분이 아니시다.
왜냐하면 땅에 있는 인간의 전적타자(全的他者)인 하늘에 계신 아버지 하나님은 절대지존(絶對至尊)이시기 때문이다.
비유를 든다면 이 말은 과거에 감히 일반 평민이 허락도 없이
분봉왕(分封王) 급(級) 정도도 아닌 그 보다도 더 큰 황제(皇帝) 앞에 직접적으로 나아가 알현 할 수 없는 것과 같고, 우리에서 뒹구는 구정물 범벅이 된 돼지와 그 돼지의 주인인 사람이 깨끗한 침대에서 함께 잔다는 것은 합당하지 않은 삶의 방식이라는 현실과 비슷한 이치인 것이다.
하지만 본질적 성품이 완전한 사랑이신 성부 하나님은 당신의 아들 성자 예수 그리스도, 참 하나님 아버지인 자신과 죄인인 인간을 이어주는 이 중보자를 인간의 육신을 입혀 이 땅에 보내셔서 성육신 하게 하심으로 - 여기서 아들이 본질상 아버지 보다 못하다거나 다르다는 말이 아님 - 오직 이 생명의 권세자요, 구세주인 아들로만,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을 뵈올 수 있는 하나님 고유의 유일한 절대적 법칙을 세우셨다.
그런고로 모든 사람에게 이루 형언(形言)할 수 없는 크나큰 특권을 받을 기회를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사(下賜)하셨는데 그것이 이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원’이다.
그러므로 신자가 율법적 신앙아래 갇혀 있다가 - 신앙인이라도 교회에 다니면서 처음부터 예수와 복음을 알 수 없고 또 오래 다녀도 그리스도의 십자가 계시를 머리로가 아닌 마음과 삶 내지 실제적으로 제대로 깨닫기란 무척 어려운 일이다 - 자신의 육적자아(肉的自我)가 십자가라고 하는 신령한 계시의 말씀에 못박혀 죽어지면 전혀 다른 차원의 그리스도 예수의 이질적 생명(異質的 生命)을 받고, 그리스도 이 분과 연합되어 이 아들과 같은 신분과 지위를 얻게 된다.
그러므로 아버지 하나님은 허물진 종자(種子)인 죄된 인생들을 아들(자녀)로서, 장자(長子)인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동등된 지위로 대접하신 다는 것을 - 신자가 신앙을 갖기 이전의 삶은 영적으론 마귀의 자녀이고, 그 이후 교회에 입문하여 육신적 사고 중심과 윤리도덕상의 초보적 수준의 율법신앙 아래에 있으면, 복음신앙의 주관자인 아들 그리스도를 다만 피상적(皮相的)으로 알게 됨으로, 아들의 믿음과 양자의 영을 소유 하지 못해서, 하나님 아버지와의 신분관계가 마귀의 자녀에서 하나님 아버지께 양자(養子)로 입적(入籍)된 아들로서가 아니라, 하나님이라고 하는 주인에게 아직은 자신이 아들이 아니기 때문에, 아바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단지 무서워하는 주종(主從) 관계일 뿐임 -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 구속사건의 계시로 드러내셨다.
바로 이 하나님의 크신 사랑이 드러난 십자가계시를 깨달은 자에게만 이 은혜는 유효(有效)하게 남김없이 적용된다.
이 계시로 주어지는 은혜는 다만 신앙생활의 연조(年條)가 깊은 오늘날 기존의 신앙인들만이 반드시 필연적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또 교회 출입을 전혀 해 보지 않은 사람들이 이 계시로 인한 하나님의 사랑을 이해하게 되기가 어려운 것도 아니다.
예수님 공생애 사역(公生涯 使役) 당시에도 그 잘나고 거룩해 보였던 유대 종교의 지도자들은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을 깨닫지 못한 심각한 영적 소경들이었다. 오히려 사회의 전형적 죄인들 중에 대표적 케이스(case)인 세리들이나 창녀들이 더 하나님의 아들 예수의 말(특별계시)을 쉽게 파악하고 받아들여 천국에 먼저 들어가는 은총을 얻었었다.(마태복음21장 28절-31절)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도 마찬가지이다.
어쩌면 오늘의 대다수의 교회의 신자들은 하나님나라 바깥백성이 되어 어두운데 쫒겨 나가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될 것이고, 부패 타락한 오늘의 교회들을 보면서 개독교라고 하는 저 죄인들, 어둠의 자식들인 안티크리스트(antichrist)들이 하나님나라 안의 백성이 될 수도 있다.
오늘날 수많은 교회들의 강단 메시지와 목회철학을 듣고 들여다보면 이 시대의 크리스찬들인 교회 지도자들과 신도들이 아들의 소원(所願)대로 계시를 받은 것 같지 않다는 진단(診斷)을 내려야만 할 것 같다.
먼저 복음적이고 개혁적인 교회를 찾기 힘들다는 것과 - 교단(敎團)과 교파(敎派)적으로 간판만은 복음과 개혁을 표방하는 교회들은 넘쳐남 - 현대교회에서 나타나는 예수를 보면 결코 천국적이지 않고 세속적이어서 목회자들에 의해 어떤 교회들은 무속적(巫俗的) 신비주의적(神祕主義的) 예수, 어떤 교회들은 율법적(律法的) 예수, 어떤 교회들은 자본주의(資本主義的) 내지 신자유주의 세계화(新自由主義 世界化)라는 제국주의식(帝國主義式) 예수, 어떤 교회들은 공산주의 사회주의식(共産主義 社會主義式) 예수 등등으로 신도들에게 그 헛깨비와 허상(虛像)인 예수가 조달(調達)돠고 있기 때문이다.
곧 대중들 눈을 깜쪽 같이 속이는 진짜와 아주 흡사한, 그리고 신앙의 감동을 주고 감격의 눈물까지 흐르게 해주는 가짜 예수란 우상들이 난무(亂舞)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모든 교회의 병폐는 스스로가 참된 그리스도인이라고 점수 주고 자리매김 하는 자들이 자기들 생각을 앞세우고 성경을 따다가 도용(盜用)을 하고 있으면서 다 계시 받고 신앙하고 있다고 오인(誤認)하는데 있다.
일반계시 차원만을 이해했거나 거짓계시를 받았으면서, 아니면 계시에 대해서 전무(全無)할 정도로 관심이 없으면서 말이다.
전부 다 예수를 전하고 믿는다고 하나 자신이라고 하는 욕망과 이데올로기의 똥덩어리를 예수에게 투영(投影)시키고 있는 것은 아닐 런지?......,
진정 오늘의 크리스찬들은 다만 교회에 등록하고 교회직분을 가지고 있다는 단순한 요식(要式) 때문에 과연 영적 신분상 아들로서, 또는 아들 그리스도 안에 있다고 오해하고 스스로 위안하면서, 하나님을 아버지로 관계 맺고 있다고 자부(自負) 할 수 있을까?
혹 아들이 아닌 종들이며 그리스도의 구속사에 있어서 엑스트라(extra)들은 아닐까?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아들만 천국을 상속(相續)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종은 천국의 기업을 이을 수 없다.
그냥 주인의 집에서 죽도록 일하다가 사장(死藏) 되는 것이 종들의 일생이다.
자칭 천국의 장자(長子)요, 주인공들이라고 큰 착각에 빠진, 세상에선 유명하나 사치하고 부패한 오늘날의 현 대한민국의 교회들은 이 영적인 참된 현실에 관하여 직시(直視)하고 명심(銘心)해야 될 것이다.